[기고]10급 공무원
모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시티 홀’은
시장비서실에 근무하는 한 10급 공무원이 계급끼리 뭉쳐진 공조직문화에, 학연, 혈연을 내세운 파벌주의에, 표에 연연한 선심행정에 환멸을 느껴
그만두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반자를 만나면서 결국 지역주민의 손에 의해 시장에 당선되고,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현안사업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그동안 폐쇄적인 공간처럼 여겨왔던 공직사회가 이처럼 드라마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는 이례적이다. 특히 생소한
10급 공무원에 대해 인터넷 검색순위에 상위를 웃도는 등 국민적 관심이 되고 있다.
공무원은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뉘며 이들 모두는 다시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으로 나눈다. 특수경력직은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정무직, 별정직 등이 있으며 경력직은 실적과 자격에 의해 평생 신분이 보장되는 일반직, 특정직, 기능직이 있다. 최근 관객 200만을
돌파한 영화 ‘7급 공무원’의 주인공들은 국가정보원 소속의 특정직이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의 최하위 직급은 9급이지만 유독 기능직에게만 10급이 있다. 공직사회 입문초기에서부터 차별이
시작되는 셈이다.
기능직은 지난 81년, 자격증이 귀하던 시절에 우수한 인재를 국가재원으로 특별채용하기 위해 생겼으나 당초 목적과는
달리 점차 수단으로 변질돼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기능직은 일반직에 비해 승진, 업무 등에서 차별을 받아왔으면서도 늘
소수직렬이라는 그늘에 가려왔었으나 ‘현대판 아전’이라는 중앙지의 사설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실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2009년 행안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하여 전국 12만 명에 달하는‘기능직 처우개선방안’을 내놓았는데 ‘기능직종
중 통신, 계리, 워드 등 일반사무 직렬은 일반직으로 전환하고 운전, 기계, 건축과 같은 기술 직렬은 상위직급을 확대한다.’는 게 주요골자였다.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기능직 공무원노동조합(기공노), 전국노동조합(전공노, 민공노), 법원노조,
서울 지역 개별노조 등 공무원단체와 행안부 실무부서는 이 문제에 대해 대략 다섯 번 정도의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확연한 입장차를 보여
왔다.
결국 행안부는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시대에 뒤떨어진 기능직 명칭을 전문직, 실무직 등으로 공모에 의하여 달리
정하고, 현재 6급까지의 직급을 5급까지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기능직들로부터 분노를 폭발하게 한 기폭제 역할 뿐이었다. 평소 한산했던 행안부 홈페이지
접속건수는 급기야 폭주해 버렸고 “기능직이란 명칭이 그럴싸하게 포장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 “5급을 신설한다고 해서 누가 혜택을
받겠나. 10년, 20년 근무해도 9급, 8급이 태반인 현실을 두고 꿈같은 감언이설로 두 번 죽이지 말라” 는 댓글은 수 백 건에 달하였다.
최근 행안부는 또 다른 처방을 내놓았다.
사무 직렬만 제한경쟁을 통해 일반직으로 전환하되 1년에 정원 15%씩, 3년간 45%정도를 전직시키며, 우선
행안부가 가장 먼저 시행(10월 시험)한다고 밝혔다.
우스운 것은 홈페이지에도 밝히지 않고 보도자료만 배포하여 언론을 통해 접하고야 말았으니 그에 대한 답글도 쓸 방법이
없다. 정작 당사자들의 입과 귀를 모두 틀어막고, 이쯤에서 끝내겠으니 다른 기관, 다른 지자체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제 그동안 행안부에 쏠렸던 기능직들의 초점은 급기야 해당 소속 기관에 분산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정부와 타 지자체의 영향을 받아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선방안이 나올 것이다. 부탁하건데 그런
개선방안을 수립할 때에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물어주기 바란다. 제주지역에만 953명의 기능직이 있지만 기공노가 별도 설립되지 아니하여 공무원단체를
통하는 방법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행안부 발표에 이어 중앙지의 추가적인 사설 ‘기능직, 일반직으로 더 과감하게’제하에서도 밝혔듯 해당기관의 전체 정원
중 일반직 80명, 기능직 20명이 기능직은 없어지고 일반직 100명으로 바꾸어진다 하여도 전체 정원에는 영향이 없다. 일반직과의 급여차별은
없으므로 총액정원제, 총액인건비 등과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이야기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그동안 받았던 설움이 이것만으로 일시에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진정한
전향적 자세만이 모두가 상생할 길이다.<강문상.민공노 제주지역본부 서귀포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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