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노조와 서로 잘 지내면서 임기 채우던 시대
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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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34개 공기업 업무보고 받아
'방만한 경영
국민들로부터 지탄'
노조에 대해
사실상의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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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9시 40분. 청와대에서 190여 명이 참석한 공공기관 합동 업무보고가 막 시작됐을 때였다. 모두발언을
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말을 멈추고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 대통령은 뭔가 결심한 듯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역할을 맡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면 떠나야 합니다.
복잡한 조직을 내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도저히 힘들겠다면….'
준비한 원고에 없던 내용이었다. 업무보고에 참석한 34개 공기업
CEO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국전력과 주택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34개 주요
공기업으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강도 높은 질타와 함께 대대적인 조직혁신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초기 공무원사회를 질타한 데
이어 공무원과 민간의 사이에 있는 공기업에 대해서도 이처럼 강도 높은 질책을 쏟아낸 것은 공직사회에 이어 공기업까지 변화해야 사회 전반의 개혁이
완성된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또 공기업 개혁 없이는 핵심 공약인 '경제살리기'를 이룰 수 없다는 위기감도 배어 있다. 공기업이 공직사회
이상으로 '복지부동'에 젖어 있는 점도 이 대통령을 자극했다. 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공공부문 개혁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공기관들이 그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했으며 '대부분 기관은 비전문적이고 안일하고
방만한 경영을 해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공공부문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CEO와 노조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특히 노조에 대해서는 '노조는 민간조직이 아니다. 정부조직이다', '노조도 공직자다. 무책임한 일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이해시켜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노조가 '밥그릇 챙기기'를 위해 공기업 개혁에 제동을 걸 경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발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 공기업에서 강성 노조가 임원진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또
임원진이 노조에 휘둘려 해야 할 일을 못하는 상황을 지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폐합 논란을 둘러싸고 각각의
조직논리를 대변하는 노조의 목소리에 묻혀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 점이 좋은 예다. 이 대통령은 공기업 CEO에 대해서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기관장들이 노조와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 조직을 아주 방만하게 운영해 돌이킬 수 없는 조직을 만든
예가 있다'며 '노조와 잘 지내 임기를 채운다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했다. 공무원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된 공기업 CEO들이 노조와 적당히
타협해 공기업 임직원들의 방만경영을 눈감아주고 본인은 예정된 임기를 채우고 떠나는 관행을 지적한 것이다. 사상 최초의 공공기관 업무보고,
대통령의 이례적인 고강도 비판, 그리고 강력한 구조조정 주문.
집권 1년차 지지부진했던 공기업 개혁작업이 내년에는 본격화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들이다. 이에 따라 취임 초기 약속했던 산업은행 민영화, 주공ㆍ토공 통합, 신보ㆍ기보 통폐합, 한전 자회사 민영화가 늦었지만
내년에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이 대통령이 의도하는 위기극복과 성장잠재력 확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년 상반기 개혁작업을 가열차게 몰아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도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조직,
기능을 그대로 두고 사람만 줄이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면서 '민간에 넘겨주는 게 더 효과적이고 아웃소싱하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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