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킬 땐 공동체, 조직개편에선 ‘왕따’, 교육행정직공무원들의 서글픈 현실
29일 오후 2시께 전남교육청 앞 도보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들어찼다. 저마다 손에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에는 ‘밀실야합’이란 단어가 적혀져 있었다.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기 위해 저질렀던 그 만행이 밀실야합이 아니던가.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 밀실야합이란 단어가 왜 나오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남교육청노조조합원 1천2백여 명이 모여 성토를 시작했다. 그제야 밀실야합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작금의 교육 현장에서도 학교의 주인 자리를 놓고 밀실야합을 통해 일방적 조직개편을 추진하는 행태가 발생한 것이다.
교육 서비스의 대상자는 ‘학생’이며, 학교의 주인 역시 ‘학생’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학생들을 위해 온갖 행정업무를 도맡아 행정서비스를 지원하는 교육청 행정직 공무원들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청 조직원의 일환으로 온갖 행정업무를 도맡아 책임감으로 일하는 그들은 정작 조직개편 시에는 완전히 배제당한 채 일방적으로 조직을 개편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진행하는 일부 사업마저 축소한데 이어 넘쳐나는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공무원들은 축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학교 내 안전을 행정실로 미루고, 보건 업무 역시 행정실로 이관시킨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에 전남공무원노조는 즉각 반발하며, 결의 대회를 진행했다.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도중 지진이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한 학교에 한 두 명 있는 행정실 직원이 전교생 몇 백 명의 안전을 지도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 것인지 되물었다.
진심으로 학교와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의 안전 관리를 한 학교에 몇 명 남짓한 행정공무원들에게 떠넘길 수는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행정공무원들이 일 몇 가지 더 맡게 돼 징징거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의 ‘편함’을 취하는 태도는 안일하다 못해 한심한 짓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심지어 이러한 조직을 개편함에 있어 4천여 명에 달하는 행정직 공무원들이 완전히 배제된 채 교사 출신들끼리 합의해 강요하는 행위는 교실 내 ‘왕따’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교실 내 학교폭력 퇴출을 위해 앞장서야 할 교육자들이 정작 자신들의 조직 내에서는 왕따를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기백관 전남교육위원장은 총 결의 대회를 열고 조합원들의 응원을 뒤로한 채 교육감과의 대화에 나섰다.
장석웅 교육감은 ‘안전 업무와 보건 업무 이관은 없던 일로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지만, 전남교육노조는 ‘우는 아이 사탕 주며 달래는 형국’이라며 우리를 공동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밀실야합을 통해 일방적인 조직개편을 통보해온 행태를 사과하고 조직개편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교육노조조합원 1천2백여 명은 추운 날씨에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투쟁을 이어 나갔다.
이날 연대사에 나선 이연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은 “안녕들 못해 이 찬 바닥에 앉아 있는 동지들에게 안녕하냐고 묻질 못하겠다”며 “촛불 혁명이 이뤄낸 현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연장 선상에 서 있는 것처럼 한결같이 ‘불통’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금이 답답하고 슬프지만, 노조답게 투쟁을 통해 대화의 장을 마련해 나가자”고 격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