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감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정부는 조직에 자긍심을 고취시켜라”

공공정책 21 6월호 특별기획 - 자치단체 구조조정

공무원 구조조정 이대로는 안 된다
김찬균 공무원노동조합 총연맹 위원장

지난 4월 26일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는 차가운 봄비가 내리는 중에도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공무원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행사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공무원 연금 개악과 강제퇴출을 저지하기 위한 공무원 총궐기 대회였다.

또다시 시작된 공무원 마녀사냥

공무원 노동자들은 왜 이처럼 분노한 것일까. 수십 년 공무원으로 근무한 노동자들은 정부출범과 공무원 감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과거 5공화국 6공화국처럼 정통성이 약한 군사정부는 정권 초기 공무원에게 사정의 칼을 들이댔다. 일부 부정하고 부패한 공무원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통해 집권의 정당성과 국민의 지지도를 높였다. 하지만 전체 공무원에게 비리 집단의 오명을 씌운 정권은 스스로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함으로써 국민 사기극이었음을 확인해줬다. 문민정부도 출범 초기 ‘공무원 사정작업’을 마찬가지로 벌였다.

국민의 정부에서 공무원 감축은 이전 정부와 사정이 달랐다.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환란이라는 IMF 구조조정을 벌이는 시기였고,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작은 정부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공무원들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6급 이하 정년 단축을 감수했고, 국가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한목숨 제물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이들이 공직에서 떠나갔다. 하지만 취임 초 강제적인 인력감축을 벌인 정권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공무원을 충원했다. 일하는 사람을 잘라내고 나니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정권 초기 공무원 사정과 감축이 일시적인 쇼에 불과하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검토 결과에 따라 정부가 해야 할 부분에 인력을 충원하는 '일하는 정부' 방식을 택했다.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작은 정부보다는 성과주의에 따른 능력 있는 정부가 흐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원 면에서는 문민정부 수준에 불과했다.

1만달러 시대보다 적은 공무원 행정인력

5공화국은 간소한 정부를 내걸고 47만 명 규모 공무원을 45만 명까지 줄였지만 5년 만에 총정원이 48만 명으로 오히려 1만 명 늘었고, IMF 환란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국민의 정부도 2003년 말에는 이전 수준까지 충원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우리나라 공무원의 수를 고려하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국민 100명 당 공무원 비율은 영국이 7.9명, 미국이 7.8명, 일본이 3.5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8명에 불과하다. 이들 나라가 소득 2만 불 때도 영국은 8.5명, 미국이 6.7명, 일본이 4.2명이었다. 이런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외국이 공무원 인력감축을 하니 우리나라도 해야 한다는 것은 말라깽이가 비만인 사람의 다이어트를 따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과거에 비해서도 공무원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 국가 공무원은 56만1952명이었고, 참여정부에서는 60만3721명이었다. 외형적으로는 4만1769명이 늘었지만 이 기간에 교육인력이 28만1769명에서 34만6135명으로 6만4372명이 확충됐다. 경찰도 9만3799명에서 10만2896명으로 1만 명 가까이 늘었다. 사회복지 향상 등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 공교육 정상화와 대민치안업무를 담당하는 교육과 경찰만 고려하더라도 일반 행정인력은 3만1700명이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돈으로 줄 세우는 웃지 못 할 행태

지방공무원은 더욱 심하다. 문민정부 시절 지방공무원은 35만7452명이었지만 참여정부 말에는 34만8638명으로 총원만 8814명이 줄었다. 하지만 그 동안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 중앙 정부 업무가 지방자치단체로 넘어와 일이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총원 감소 여파는 더욱 크다. 참여정부에서만 1200여 건의 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두 배가 뛸 정도로 경제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복잡다기해지며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정부가 돌봐야 할 소외계층은 더 늘었지만 행정인력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부인력 공무원 강제퇴출은 이처럼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인 2월 29일 ‘지방자치단체에 이양된 사무가 차질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적정한 정원의 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시행령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자체 조직개편 권고안을 내놨다.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지방자치단체 조직개편의 기본 방침은 총량 규제다. 일을 어떻게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감원 목표 수치를 정해놓고 어떻게 든 알아서 맞추라는 식이다. 246개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와 농촌, 공업도시와 관광도시, 노령화 지역 등 각양각색의 특징에 따라 업무환경이 다르다. 그런데도 총액인건비 기준 인력 5% 절감하라는 지침을 내놓고 지키면 교부금을 주고 10%까지 더 절감하면 절감액의 50%를 교부금으로 더 주는 식으로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를 돈으로 줄 세우는 웃지 못 할 행태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총액인건비가 무엇인가 지방자치단체 특성에 따라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제도가 아닌가.

공무원 노동자들이 공무원 감원을 결사 저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비단 생존권 때문만은 아니다. 공무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졸속적인 인력감축에 절망하는 것은 스스로 이뤄온 개혁의 성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가 몇 명 공무원을 감원하는 것보다 정책에 대한 신뢰이며 정책의 지속성과 연속성이다.

작은 정부는 국민 특히 소외계층에게 피부에 닿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또 인력감축은 국민을 바라봐야 할 공무원들이 과장․국장의 눈치를 살피고, 과장․국장은 실장․기관장 상층부 동태를 파악하느라 동분서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부적인 충성도는 높아질지 모르지만 공무원들은 수동적으로 변하고,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국민을 위한 행정발전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는 지난 정권의 인기영합식 공무원 구조조정에서 수차례 겪은 경험치다.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해야 하는 직업공무원제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진정으로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공무원, 특히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감원이 불러올 문제점은 비상시 대응체계를 약화시키고 국민과 행정을 단절시킨다는 점이다. 진정 선진화로 가고 싶다면 신뢰를 기반으로 조직이 힘을 내야 몇십배의 효과가 있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려면 공공서비스를 확대하는 게 우선이다. 국정운영에서도 민간기업 CEO처럼 시장의 효율만을 강조한다면 복지와 소외계층의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상반기 전국을 강타한 AI(조류독감)만 하더라도 공무원이 24시간 방역 근무를 해도 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일반인들은 일당 30만원을 준다 하여도 감히 엄두를 못 내는 작업에 공무원들은 목숨을 내걸고 방역에 나섰다. 비단 AI뿐만이 아니다. 현장을 지키는 지방공무원들은 수해가 발생하면 수해현장으로, 산불이 나면 산으로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복지 인력들은 복지제도가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서민과 소외계층을 찾아 보살핀다. 양극화가 심화된 우리 사회에서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밀착된 행정이지, 실용을 내세운 막무가내식 공무원 감원이 아니다.

이처럼 하위직 강제퇴출, 공공기관 민영화에 이어 지방공무원에 대한 대규모 감원은 힘없는 하위직 공무원 죽이기로 귀결되고 이는 국민과 행정의 단절만 가속시킬 것이다.

사용자가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대화를 거부하고 초법적 행동을 일삼는다면 노동조합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국민에겐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권익보호를 이유로 조직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비치어 질 수 있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노동조합은 그름의 길에 설 수 없다.

그동안 가난을 벗기 위해, 국가발전을 위해 누구보다도 공무원조직의 희생이 컸던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조직에 자긍심을 주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 이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진정으로 갈등을 녹이고 동반상생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행정력을 넓혀 신뢰를 얻고 국민에 대한 공공서비스 질을 넓혀 가야 한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정권 초기 강박관념과 불도저식 인기영합주의 한 건 밀어붙이기에 국민은 박수를 칠까? 행정이 국민과 멀어질 때 이득을 보는 것은 정보가 풍부하고 권력에 가까운 특권층일 뿐이다. 국민이 바르게 판단하는 시간이 곧 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소모적인 시간 동안 공직 시스템은 멍들고 상처는 깊어질 것이다. [공공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