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교육개혁 대부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자율형사립고는 기본 구상도 나오지 않았고,
교원평가제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선잠을 자고 있다. 교육부
본부와 지역 교육청 간 순환 인사의 문제점을 단절하겠다는 방침은 이젠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교육부 관료들은 좌편향 왜곡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나서 고치나마나 한 지엽말단(枝葉末端)만 건드리면서 괜한 소동을 피워 좌편향 왜곡 교과서 필자들의 조직적 반발을 유도하는 게 아니냐는
느낌마저 주었다. 영어 전문교사는 교원자격증과 상관없이 뽑겠다더니 결국은 교원자격증 소지자로 자격을 국한시켜 사대·교대 출신 기득권만
키워놓았다.
정부는 장관이 교육개혁을 밀고 나가려 해도 전(前) 정권 코드에 익어버린 관료들이 들은체만체한다며 교육과학부 1급 7명
전원의 사표를 받았다. 왜 교육부에선 장관 말이 이렇게 먹히지 않는 것일까. 알고 보면 거기엔 사정이 있다. 지금은 위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교육부 장·차관, 고위 간부들이 자리를 그만두는 즉시 교육부 관리의 감독과 허가를 받는 대학의 총·학장, 교육부 산하 기관장으로 옮겨가는 관례
때문이다.
2000년 이후 교육부 장관을 지낸 13명 가운데 김덕중(아주대),
송자(한국사이버대), 한완상(한성대), 이상주(성신여대),
김도연(울산대)씨 등 5명이 대학총장으로 갔다. 그 밖에 정신문화연구원장(윤덕홍),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이기준)
등 교육부 관련기관 책임자로 간 사람도 2명 있다. 차관 경우엔 9명 가운데 이원우(한경대),
김상권(광주여대), 최희선(중부대), 이기우(재능대) 등 4명의 총·학장이 나왔다. 사학연금이사장(김상권·서범석), 대교협
사무총장(김영식), 교원공제회 이사장(이종서) 등 교육부 산하 기관장도 4명 배출됐다.
교육정책은 많든 적든 정권의 이념적 지향의
영향을 받는다. 지난 정부에서 좌파(左派) 교육정책을 입안했던 관료들이 자기 손으로 그 교육정책을 전환하는 일에 신바람을 내기는 힘들다. 이
상황에선 장·차관의 리더십 유무(有無)가 이런 행정 공백의 장기화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지금은 높은 자리에서 지시하고 명령하지만 머지않아
자신들에게 정원 확대 청탁, 각종 보조금 청탁을 들고 올 장·차관, 1급 관리들에게 어느 국장, 어느 과장, 어느 사무관이 마음으로
승복하겠는가. 장·차관들도 기껏해야 6개월, 1년 있다가 그만 두고 총·학장이나 산하 단체로 나갈 걸 생각하면 교육부 관료들에게 밉보일 일에
성큼 나서기 어렵다. 훗날 교육부 지원에서 찬밥이 되거나 교육부 등쌀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립 대학이나 지방 대학 총장으로 나가봐야
교육부 과장, 교육부 사무관이 얼마나 무서운 저승사자인 줄 알게 된다고 한다. 내년부터 집행되는 '세계 수준 연구 중심대학(WCU)사업'만 해도
5년간 8250억원이 걸려 있다. 국가 핵심 연구사업, 산학 협력사업, BK21, 누리사업, 수도권 특성화사업 등 수천억 예산 규모의 사업에 각
대학이 한 자리 낄 수 있느냐도 교육부 관료들 손 안에 들어 있다. 대학들은 이걸 노리고 장·차관을 비롯해 교육부 1급, 국·과장 출신들을 좋은
자리로 모셔가고 훗날 이런 자리로 옮겨가 교육부 관리들의 전관(前官)예우에 기대서 소속 직장에 밥값을 해야 하는 현직 관리들은 모나지 않게
행동하고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게 일종의 실직(失職)보험이다.
법조계 뺨치는 교육부의 전관예우 관행을 그대로 두고선 교육개혁은 안
된다. 교육부 고위직 출신은 일정 기간 대학 총·학장으로 가는 걸 규제해야 한다. 교육부의 이런 기득(旣得) 이권을 혁파하는 길은 혁명적
수준으로 대학에 대한 교육부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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